[특별공지] 연평도 포격 3년째를 맞이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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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23일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 !! 당시 우리는 극악 무도한 도발에 할 말을 잊었다. 미친개는 몽둥이로 다스려야 한다는 말이 있다. 참는데도 한계가 있으며 비상식적인 극악한 집단은 몽둥이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무력으로 즉시 대응을 했어야 버르장머리를 고치고 우리의 역량을 보여줬어야 하는데 당시에 참으로 안타까웠다 . 암적인 존재는  커지기 전에 빨리 수술을 해야 하는데….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는 반드시 즉시 응징을 해서 다시는 무고한 희생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대한민국정부의 방침에  확고한 지지를 보내며
민주평통싱가폴지회가 주최한 백일장에 대상으로 입상한 당시의 현역군인으로 복무중이었던 김세중군의 생생한 글을 올리며 희생자분들의 명복을 빈다.
봉 세종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지회장
김세중군의 생생한 글
현역 군인으로 기억되는 연평도 포격사건
김 세중
11월은 특별한 공휴일이나 기억되는 날이 드물다. 싱가폴에 거주하는 여러분은 현지학교들의 입시시험이 있지 않느냐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는 대입 수능시험이 치러지고 11월11일에 특정과자를 서로 나누어서 우정을 쌓는다는 날도 있다. 그러나 앞에서 열거한 날들이 우리 조국과 사회에 중요하여 꼭 기억해야할 날인가? 작년에 이루어진 설문조사에 의하면 6.25전쟁이 1950년 6월 25일에 발발했다는 한국인으로서의 상식조차 모르는 젊은이가 너무나도 많았다는 것이다. 하물며 2010년 11월 23일은 그들에게 특별한 날은 될 수 없을 것이다.
2010년 11월 23일은 우리의 주적인 북한군이 연평도에 포격을 가한 ‘연평도 포격사건’이 일어난 날이다. 우리군은 북한군에 통보한 이후 미군과 함께 서해상에서 북한을 등지고 방어훈련을 하고 있었다. 등지었다는 의미는 포신 또는 함포가 북한이 아닌 남한을 향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북한군은 훈련중지를 요구하며 협박하였다. 그런 대치상황에 있길 며칠 뒤인 11월 23일에 북한군이 연평도에 포격을 가한 것이다. 제 1연평해전, 제 2연평해전 그리고 KAL기 폭발사건과 같은 과거의 북한정권이 시도한 도발과 차이가 있다면 포격의 위치가 특별했다. 즉, 연평도 포격사건은 1953년에 있었던 북한군과의 정전협약이후 최초로 우리의 영토가 공격을 받은 것이다. 북한군은 한두 발이 아니라 수십 발의 포격을 가하였고 민간인 2명과 해병대원 2명을 사망케 하였다. 이러한 내용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필자에겐 생생하다.

2010년 7월 19일, 8년간의 싱가폴 생활을 잠시 뒤로 하고 필자는 육군으로 입대하게 되었는데 우리 축구대표팀의 남아공 월드컵의 선전만을 추억하며 초등학교 입학하는 어린이 마냥 ‘군대도 별거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쫄래쫄래 훈련소에 들어갔다. 싱가폴에서 직접 논산훈련소까지 함께 해주셨던 어머니를 안아드리지도 않고 집합지로 가면서 뒤돌아보지도 않았던 내 자신을 후회하기엔 너무 늦었었다. 조금이라도 남자다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그랬지만 1초라도 어머니께 건강한 나의 모습을 보여드릴걸 하는 후회가 있었다. 입대를 앞두는 청년들이 있다면 이별하기 전에 사랑하는 이들에게 꼭 진심을 전하고 입대하였으면 한다.

더웠던 8월의 훈련병 생활을 지나 9월의 ‘곤파스’라는 태풍으로 인한 피해복구에 동원되며 서울의 한 향토사단 본부근무대로 자대배치를 받게 되었다. 혹자는 서울에서의 군 생활이 쉽다고 말하지만 시대의 정세는 그렇지만은 않았다. 2010년 3월에는 천안함 피격사건이 있었고 11월 초엔 범국가적인 행사였던 G-20정상회의가 다가오고 있어서 부대 안팎으로 엄숙한 분위기가 긴장감을 조성하였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정상회의는 성공적으로 개최되었고 민∙관∙군 모두 기쁨을 느낀 지 얼마 되지 않아 북한군은 포격을 가하였는데 대한민국의 행복을 시샘하여 가만두기 싫었던 것 같았다.

포격이 있던 그날 필자는 어느 때처럼 갓 들어온 이등병으로서 선임에게 혼도 나면서 일과를 수행하고 있다가 전화를 받았다. 평소 어리석기로 유명한 인사계원 윤상병이었다. 휴가 나가면서 실수로 생활관 총기보관함 열쇠를 집인 부산까지 가져갔다가 그대로 당일에 휴가 복귀했던 일화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던 그 선임이었다. 그런 그도 나에게 전화하여 소식을 전파한 그 순간만큼은 진지했다. 어느 때처럼 행정보급관이 부른 것이 아니라 비상이고 주변 병사들에게 알려서 신속히 막사로 복귀하라고 전달하라는 내용이었다. 마지막 그의 한마디는 아직도 기억난다. ‘실제상황’ 이 단어 하나는 나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영화 같은 순간이 드디어 오는건가 하는 어리석은 흥분은 곧 뭔가 알 수 없는 공포로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사무실에서 막사로 뛰어가던 그 10분 동안 내 머릿속은 그저 ‘설마…….’만 반복하고 있었다.
그 공포감은 지금도 돌이켜보면 군 생활 동안 있었던 그 어떤 공포 못지않게 기억에 남는다. 막사로 도착한 우리 분대는 재빨리 단독군장으로 준비하였다. 즉, 탄띠와 방탄헬멧, 방독면과 K-2 소총을 휴대하였는데 하늘 같은 선임들도 천안함 피격사건이 있은 후 몇 달 되지않고 일어난 실제상황이라 진지했다. 아직까진 70년대에 지어진 오래된 막사에 있어서 TV앞의 침상에 모두 나란히 그리고 조용히 집중하며 뉴스속보를 시청하였다. 포격의 흔적들과 민간인들의 절규와 눈물을 보니 그 동안 TV에서만 보았던 숱한 지구촌 난민들보다 더욱 내 마음을 움직였고 단순한 안타까움, 슬픔 그리고 분노로 나도 모르게 시나브로 변해가고 있었다. 연평도의 주민들은 무슨 죄가 있었는가? 연평도에 위치한 해병대원들은 나라의 부름을 받고 자신의 임무를 다하려고 노력중인데 그들에게 무슨 죄가 있었기에 공격을 받는가? 전역하기 전 마지막 휴가출발을 위해 연평도에서 육지로 가는 배를 타려다가 북한군의 포격에 대항하여 부대로 다시 돌아왔으나 애석하게 전사한 故 서정우 하사와 8월에 입대했다가 얼마 되지 않아 안타깝게 전사한 故 문광욱 일병은 처음으로 나에게 ‘전우’라는 단어 마음으로 이해하고 느끼게 해주었다.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지만 동병상련이라 했던가. 같이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면서 같은 고민도 하고 가족과 친구들이 그리운 혈기왕성한 20대의 젊은 청년들이 아니었던가. 그 두 병사의 전사소식을 들은 우리는 하나같이 말은 없었으나 각자의 총과 방독면을 더욱 세게 움켜쥐고 있었다. 바보같이 착하다는 소리를 듣던 필자도 그 순간만큼은 마음속으로 이를 갈구고 있었다. 흥행영화의 대사처럼 나를 평양으로 보내달라며 지금 생각해보면 어리석고 헛소리 같은 생각을 하며 긴장하고 있었다. 그리곤 이내 집이 생각났다.
선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바로 싱가폴의 집으로 전화를 하였다. 국내통화 하듯이 싱가폴로 통화가 가능했던 070 인터넷 전화 서비스가 군복무 시절엔 너무 소중했었다. 집으로 전화한 필자는 부모님과 여동생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짧은 대화를 나누고 안부도 전하며 끊었다. 회상해본다면 이 순간이야말로 부모님과 여동생에 대한 사랑을 지금도 기억이 나도록 느꼈었다. 내 가족과 나라는 나와 기타 군인들이 힘을 모아 지킨다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이다.
전 부대는 언제든지 출동준비를 갖추면서 대기하던 중 포격이 멈추었다는 방송을 접하게 되었다. 이제 뭘 해야 할 지 모르는 상황에서 다행히 추가적인 교전과 대치는 없다고 전해 들었다. 그러나 우리는 단독군장 차림의 생활을 몇 달간 계속하였다. 즉, 화장실이든지 취침 할 때도 소총을 몸에 휴대한 채 취침하는 생활이었는데 무엇보다도 병력관리를 하기위해 출타를 통제한 것이 제일 힘들었다. 결국 필자는 입대한지 9개월만에야 첫 휴가를 즐길 수 있었다.
필자는 군 생활이 굉장히 감사했었다. 자신의 정체성, 목적, 그리고 관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 중 정체성의 경우 한 남자, 아들, 오빠 그리고 이 나라의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생각할 수 있었다. 내 나라에 대한 사랑 그리고 이 나라를 지키고 물려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그것이었다. 연평도에서 포격에 맞서 반격하던 해병대원 중에는 자신의 방탄철모가 불타고 있는지도 모를정도로 격렬히 그리고 용감하게 싸운 이가 있었다. 이러한 군인이자 사회에선 평범한 청년들의 모습에선 책임감과 애국심이 느껴지지 않는가.
‘손 잡고 가보자 달려보자 저 광야로 우리들 모여서 말해보자 새 희망을…….’ 많은 사랑을 받은 대표가요 ‘아름다운 강산’의 일부분이다. 최근의 경제위기와 뒤숭숭한 사회적인 문제로 상처받는 우리들에겐 희망이 필요하다. 그 희망은 우리나라 대한민국과 함께해야 한다. 우리가 모여서 새 희망을 말할 수 있는 나라, 아름다운 팔도 금수강산의 대한민국은 우리가 서로 다투지 않고 손잡고 북녘 동포들을 만나러 가보고 달려봐야 이루어지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선 먼저 우리의 북녘 동포를 고통 속에 몰아넣는 북한정권으로부터 우리나라를 지키기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국군장병에게 감사한 마음과 우리나라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진심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우선 실천해야 하지 않나 감히 생각해본다. 동족상잔의 비극인 한국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임을 상기시켜주는 사건은 바로 연평도 포격사건이다.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를 꼭 기억하자.